25년 2월 18일

25년 2월 18일
으레 생각이 많아질 때면 글을 적는다. 살면서 배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감정을 적어서 가라 앉히면 하지 못했던 생각, 보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
지금 날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이 뭘까. 학원 수업이 월요일에서 금요일 까지 있다. 직장인과는 다르게 하루에 세 시간, 네 시간 정도를 일하지만, 그것조차 벅차다.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데 페이는 직장인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 그러나 일이 오후에서 저녁이고 시간이 매일 달라 다른 일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돈으로 귀결된다.
허나, 감정을 가라앉히자. 지금의 이 뚜렷하게 말 못할 불안과 불만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 일이 보람이 없다. 이거야 뭐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갖고 있는 불평이지만 내겐 왜 이리 크게 다가오는 것일까. 아직 어려서 그런 것 같다. 보람이 왜 없나? 처음에 강사 일을 시작할 땐 학생들의 드라마틱한 성장을 기대 했다. 그렇기에 열정도 있었고, 욕심도 있었다. 아이들이 단기간에 실력이 크게 올라 내 가치를 인정받길 원했다. 그러나 그 생각과 열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냥 출근해서,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제를 풀어주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을 채우다 집에 돌아온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지도 않았으면서 집에 오면 굉장한 피로를 느낀다. 다른 무언가를 하기엔 에너지가 없고 그렇다고 그냥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그렇다,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을 지도 모른다. 무의미함. 내가 군대에서 지독하게 느꼈던 그 감정. 내 시간이 내 맘대로 쓰여지지 못하고,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게 뭔가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닌, 그냥 한 달의 생활비를 벌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그냥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지만, 그렇게 부족하지도 않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난 의미가 없음을 느끼고 이렇게 괴로워 하는 것 같다.
일단 아이들에게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공부에 대한 열망도 없고, 의지도 없다. 내 생각처럼 드라마틱한 실력 상승을 이끌어내려면, 강제성을 가져야 한다. 강제로 풀어 오라고 시키고, 학원에 오래 잡아두는, 그런 방식. 내가 죽도록 싫어했던 그런 방식을 가져가야 한다. 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원생들과 감정적인 마찰이 생긴다. 그런 반항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 성적이 오를 수 없고, 그렇다고 분위기를 잡으며 눌러 버리면 아이들은 나에 대한 반감을 갖는다. 군주론에도 나왔듯 미움은 경계해야 하는 감정이다. 꼭 군주의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내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진탕 싸우고 나면 수업이 좋아질 리가 없다. 가뜩이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운데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이다. 내 에너지를 쓴다는 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데, 하루에 그 일 밖에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일을 직업으로 가질 생각이 없다. 일을 해 보면서 느낀 사실이다. 출신이 출중하지도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다. 그냥 학생 때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로 치부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그러기 위해선,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그 에너지로 운동도 하고, 음악도 좀 공부하고 기타 다른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학생들에게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럼, 금전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재수 막바지, 10월에서 11월에 피자집 알바를 한 까닭은 의미를 찾기 위함이었다. 내 쓸모, 내가 뭔가에 쓰임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내재된 깊은 인정 욕구를 충족 시킨다. 내가 일을 하고, 가치를 만들어내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 별거 아닌 감정은 경험상 꽤나 유익하고, 건강한 인생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금전적 보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주일에 주 5일을 일해도 한 달에 백 만원을 벌까 말까다. 이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달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만 70이다. 나머지 삼십에서, 생활비와 기타 용돈을 제하면 매 월 적자를 낸다. 이건 내가 바라던 인생이 아니고, 절대 옳은 방향이 아니다. 일하는 시간이 적어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가 조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원생이 늘고, 반이 추가로 편성되어야 돈이 는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한 두시간 더 일한다고 수익이 극적으로 늘지는 않는다. 그래봐야 몇 만원 더 벌 뿐이다. 그러니 이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학원에서의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이다. 부원장의 이상한 지시에 감정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인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는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에너지만 쓰고,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다. 이 얼마나 무의미한 소모인가. 내게 내재된 특유의 반골 기질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요구들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게 되지만 전혀 의미 없다. 학원은 내 뜻대로 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맘도 없다. 목적을 바꿔야 한다. 학원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빠르게 키워 낸다- 가 아니라, 학원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 주어진 일만 한다. 그냥 시간을 채운다는 마인드로 수업을 하자. 1대1수업이라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다 보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된다. 그냥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만 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하자.
물론, 건전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렇게 하는 게 맞다. 학생의 성적이 갑자기 오른다고 해서 내게 보수가 추가로 주어지는가? 아니다. 성적이 오르든 말든 내 보수는 정해져 있다. 수업 시간에 비례해 증감할 뿐이다. (그래서 난 내 계약이 절대 프리랜서 계약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은 싸워서 얻어낼 지 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학원을 크게 부흥시키는 게 과연 내게 도움이 되는가? 내가 앞으로 강사일을 전문적으로 할 것이라면 그렇다. 학원을 성장시킨 경험은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그걸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강사가 학원의 네임 밸류를 올리는 건 성적 상승 밖에 없다. 근데 그러려면 어쨌든 강제성을 가져야 하고, 내 감정을 써서 애들과 싸워야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또한, 그렇게 한다고 성적이 오르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강제로 하는 무언가는 언제나 속에서부터 곪기 마련이다. 그리고 만약 학원의 네임 밸류가 오른다 하더라도 내가 추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지금껏 학원 운영자를 지켜 본 결과, 학원의 수익이 두 배로 뛰어도 시급은 인상될 것 같지 않다. 이미 원생에겐 남들보다 비싼 학원비를 받고 있지만, 교사의 수익은 그것과 너무나 차이 난다. 그러니까, 남 좋은 일을 싸게 해주는 격이다.
그럼 한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직장을 찾는 것이다. 근데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나는 학생 신분이고, 전공 역시 수학이나 국어와 무관하다. 대학이 이름이 조금 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의 대학 역시 아니다. 어딘가 애매한 위치다. 내가 이 학원을 관두고 다른 학원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일 뿐더러 거기서 이 정도의 업무 강도에 이 정도의 페이를 받을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다.
결국 선택의 폭이 좁다. 그러나 내가 이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자.
학원의 장점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먼저 수업 내용에 대한 터치가 적다. 진도를 어느 속도로 나가든 피드백이 들어오지 않는다. 솔직히 한 시간 그냥 수다 떨다 수업을 끝내도 아무도 모를 그런 시스템이다. 학생 성적이 왜 안 오르냐고 물어보면 그냥 학생이 열심히 안한다는 핑계를 대면 된다. 그리고 사실 그런 학생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최대로 활용하려면, 수업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럼 에너지가 적게 든다. 그럼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 역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두번째, 업무의 결과에 상관 없이 일정한 페이를 받는다. 처음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성과에 대한 보수 개념이 아니라, 근로에 대한 보수의 개념이기 때문에 수업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몇 시간 일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 역시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세번째, 학원이 상대적 을의 위치에 있다. 학원은 수학 선생이 또 바뀌는 걸 두려워 한다. 이미 두 번 바꼈고, 학부모와 원생들 역시 불안해 하고 있음을 안다. 또 지금 학생들과 좋은 유대를 쌓아 놨기에, 내가 관두려고 하면 아마 몇 번 붙잡을 것이다. 그렇기에 중간에 부당해고 당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일해야 할지 윤곽이 드러난다.
먼저, 수업에 열을 뺀다. 열과 성을 다해 수업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내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일을 한다. 부원장의 이상한 지시에 열을 올리지 말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넘긴다. 모든 일에 감정을 배제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손해만 보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업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난이도를 대폭 낮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금 기본적인 연산-즉 이항이나 덧셈, 뺄셈, 전개 같은-조차 안된다. 연산 위주로 죽어라 돌린다. 일단 연산이 되어야 다른 걸로 넘어갈 수 있다. 기본적인 개념과 연산을 숙달하는데 최우선 목표를 둔다. 그럼 수업에서도 어려운 문제를 안 풀게 되니까 에너지를 덜 쓰게 되고,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 느끼는 부담 역시 줄어든다.
그렇게 아낀 에너지로 다른 일을 한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상 공부를 하거나, 음악 공부를 하거나, 헬스장에 들어가서 무거운 걸 든다. 이렇게 살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추가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해 본다. 이런 월급쟁이로서의 삶은 부의 축적에 큰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자. 완전히 바꿔야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에너지를 써야 할 곳에 집중하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오늘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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