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9월 19일
졸립지만, 그 졸음을 견디고서라도 적고 싶은 오늘의 경험이다. 새벽에 모기 때문에 잠을 깨고, 잠이 다시 오지 않아 영화를 한 편 봤음에도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섰다. 담배를 한 대 피고 산책을 하는데, 교회 앞 계단에 앉은 한 아저씨가 보였다. 기타를 들고 앉아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버스킹을 한다면, 또 인기를 끌고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기 위함이라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게 옳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사실 이전에 그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한 외국인을 옆에 앉혀 두고, 광화문 연가였나. 이름 모를 옛날 노래를 최선을 다해 부르고 있었다. 그 사연이 궁금했기에 그에게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았다.
그는 말을 굉장히 길게, 장황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12년 동안 음악을 해 왔다고 한다. 여러 직장에 다녔고, 그러다 음악을 하게 되었다. 강변 가요제도 나갔지만 순위권에 들지 못했고, 여러 음악 카페를 돌면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도 공연을 하고.
그는 나이가 꽤 많아 보였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적게 잡아도 5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국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집에 갈까 고민했는데 계속 있다 보면 그래도 국밥을 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계속 버스킹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팁박스엔 천원 한 장도 들어있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도, 그는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다가가자, 그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에게 노래 한 곡 불러주실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리를 권했다.
옆에 앉자, 그는 그의 오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기 시작했다. 상술한 이야기를 아주 길고 장황하게 했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두 가지였다. 그는 두 명 때문에 평생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하나는 SG워너비의 김진호 이야기였다. 자기가 공연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김진호가 다가와서 노래를 듣고, 그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평생 노래를 계속 해 달라며 팁을 주고 갔다고 한다. 또 하나는, 부산의 한 노래 클럽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한 여대생이 김광석의 노래를 한 곡 불러달라고 청했고, 그는 ‘거리에서’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대생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평생을 컵라면만 먹으며 산다고 하더라도 평생 노래를 하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를 보면서 식지 않는 열정을 느꼈다. 사람은 일생을 전부 기억하기 보다, 인상적인 몇몇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몇몇 순간들은 누군가에겐 계속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가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이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음악을 한다고. 사실 그는 노래를 잘하지도, 기타를 잘치지도 않았다. 발성도 불안정했고, 강약도 어딘가 이상함이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울림이 있었다. 아마 그가 살아온 생애가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매일 컵라면을 먹더라도 음악을 계속 하겠다는 그 각오는 존경스러웠다. 과거의 그 기억, 그 기억들이 그를 계속 살게 하고, 계속 노래하게 했으리라.
노래를 하는 그 시간, 온전히 그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촌스러운 노래지만 그는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그는 비록 늙었지만 그의 눈은 다섯 살 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선글라스도 그 총기를 가리진 못했다.
젊은이여, 무엇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너는 그보다 어리고, 매 끼니 컵라면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롭지 않은가?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이 뭐라고, 그 두 사람이 생계를 보장하지도 않는데 뭣하러 그런 무식한 딴따라를 계속하고 있는가? 그러나, 시체처럼 사는 사람들아, 누가 그에게 그런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당신들은 잘 살고 있는가? 무언가에 일생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을 일생동안 계속 할 자신이 있는가? 단 한 명의 관객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그 한 명을 위해 모든 걸 바쳐 노래할 자신이 있는가? 그는 경이롭다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두 곡을 듣고, 사실 두 곡보다 더 많은 분량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도 한 곡을 불렀다. 뭔가 단순한 대화보다, 그런 식으로 그와 교감하고 싶었다. 그는 노래를 듣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칭찬을 했다. 아르페지오가 듣기 좋고, 노래에 소울이 담겨 있고, 자신이 수 백의 뮤지션을 만났는데 그 중 탑 3 안에 든다나.
그는 내게 자신도 흔들릴 때가 있다고 했다. 어렵게 살면서, 음악을 계속 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게 된다고 했다. 맹세를 했지만, 음악이 즐겁고 행복하지만 매일 좋아하는 국밥 값도 못 버는데 이 짓을 계속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 때도 많다고 했다.
이전부터 국밥 이야기를 계속 늘어 놓은 그였다. 내게 은근히 팁을 바라는 것 같았으나, 음악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기는 행복하고 고맙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내가 그 날의 국밥을 사주기로 했다. 집으로 가서 만 원을 챙겨 다시 옆에 앉았다. 그는 정말 아이처럼 기뻐했다. 단 돈 만원에 말이다. 자신이 가진 5천원에 더해 국밥을 좀 사먹으려고 했는데, 국밥 값이 해결되었다며 엄청나게 고마워했다. 남은 돈으로 소주와 안주를 사먹겠다고 말하면서 그는 행복해했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꺼지지 않는 열정을 보았다. 아이의 순수함을 보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 지는 모르지만 그런 삶의 자세를 갖고 살아가려고 한다. 해이해지고, 방황하는 시기에 좋은 귀인을 만났다. 그의 예명은 ‘김한’이라고 한다.
그는 내게 90도로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했고, 나 역시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