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월 13일
배달을 다시 시작했다. 과외가 하나 끊겼고, 하나는 지금은 끊긴 상태지만 2월에는 다시 하신다고 하니, 뭐 기다려 봐야지. 과외비를 선불로 받기에 과외가 끊기면 그 달의 수입을 충당해야 한다. 원래라면 단기 알바를 찾아 봤을 텐데 지금은 그래도 배달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눈이 오고, 날씨가 춥고, 길은 얼어 있다. 배달을 하며 매 번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러다 뒤지겠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천성이 이상해서 그런지 그럴 때 스릴을 느낀다. 최상급 슬로프를 타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스릴을 즐기기엔 너무 위험하니 최대한 속도를 줄여서 조심조심 다닌다.
최근에 자전거 타이어를 교체했다. 원래 샵에 가서 공임비를 내고 맡겨야 하지만, 어찌저찌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 한 6시간 정도 애쓴 것 같다. 역시 천성이 이상해서, 그런 일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 엄마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다. 이제 자전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것 같다. 웬만한 정비는 다 혼자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됐다.
미션이 있을 때 기준으로 시급이 2.5~3 정도 나온다. 나쁘지 않다. 다행히 방학이고 배달 성수기라 약간의 수익이 좀 남을 것 같다. 과외를 더 구하려고 하겠지만, 뭐 구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있겠나. 그저 살아갈 뿐이다.
배달을 하며 음악을 듣거나 조남호 아저씨의 팟캐스트를 듣는 걸 좋아 한다. 계속 듣다 보니 같은 말을 반복하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좋은 삶의 태도를 배우는 기분이다. 충만주의. 허무주의가 아닌, 매일을 충만하게 사는 것. 나는 정말로 충만하게 사는가? 그러나 충만주의 역시 어떠한 동기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허무주의의 결을 띄는 것 같다. 매일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사는 것. 난 성취감이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하나의 목적주의라는 걸 깨달았다. 목적 없이 사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의 시선과도 많이,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러나 조남호 아저씨가 말했듯, 이게 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애초에 먼 미래를 생각하며 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것. 살아 가는 것? 그게 목표라면 목표일 것이다. 한 가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은,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가? 지금껏 살아온 관성대로, 매일 롤을 하고 남는 시간에 과외와 수입을 충당하기 위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도 될까? 현재 배달까지 하면 월 200정도 버는 삶을 산다. 근데 정말로, 월 200의 삶이 나쁘지 않다.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밥을 해 먹고 가격표 앞에서 고민하긴 하나 크게 어렵지 않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난 그 게임의 구조가 좋다. 수 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인간에게 영향받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과 참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난 그것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나? 정말 목적 없이 그 순간이 즐거워서 게임을 하는가? 난 승리를 원하고, 그것에서 오는 성취감을 원하는 것 같다. 이것도 하나의 목적주의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목적이 나쁜 것이고, 필요하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 취업을 위해 애프터이펙트를 공부하고 있고, 무언가 컨텐츠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 필연성은 무엇인가?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가? 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건 좋아하지만, 그 고민과 편집의 시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떤 거창한 결과,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결과를 내려면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결과를 내기 위함인가? 이것 역시 목적주의인가? 그냥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 큰 고민 없이 하는 게 충만주의인가?
조남호 아저씨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게 조남호건, 니체건, 예수건, 부처건, 결국 내 인생이고, 결정하는 사람은 나다. 그가 내 얄팍한 세계관에 금을 가게 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준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나 그렇다고 모든 일을 그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철학을 정립한다. 내 취향대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운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하자. 세상이 어떤 괴로움을 주더라도, 그것에 굴하지 않는다.
10대 시절, 나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외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내적으로는 꽤나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쁠 뿐이다. 이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불행이 겹겹이 닥치며 나를 무너뜨리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모른다. 그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주어진 내 삶을 살아갈 뿐이다.
다시 큰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해야 하는가? 이런 류의 질문은 필연적으로 ‘~를 위해서’ 꼴의 답을 부른다. 돈을 벌기 위해, 성취감을 얻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살기 위해 등등. 이것 역시 다른 목적이 되지 않는가? A를 위해서 해야 한다라는 대답이라면, A를 얻지 못한다면 잘못 산 게 되어 버린다. 그럼 ‘그냥 하라’가 정답인가? 그러나 그런 답은 내게 어떠한 동기도 제공하지 않는다. 어떤 답이 좋을까? 나는 애프터 이펙트 공부를 왜 하려고 하는가? 취직을 위해서, 또 내가 원하는 것과 상상하는 바를 실체화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1) 애프터 이펙트를 전문가 수준으로 다뤄도 취직이 안 되고, 2)내가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너질 것이다. 그럼 굳이 해야 하는가? 제일 좋은 것은 결과에 초연한 태도다. 그냥 한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도 좋다. 나는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했고 내 모든 걸 집중했으니까. 온전히 살았으니까. 근데 그래서, 왜 해야 되는가? 그러니까, 꼭 애프터 이펙트일 필요가 있는가? 그림이든, 글쓰기든, 음악이든 상관이 없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 미완성의 결론을 하나 내려고 한다. 동기를 만들려면 어떠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시작했더라도 그 이유에 얽매이진 않는다. +alpha의 느낌이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내가 수능을 준비했던 마음가짐과 닮아 있다. 좋다. 완벽한 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에 든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무언가를 하되, 열심히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엔 초연하라.
+ 이전의 일기를 업데이트하면서 쭉 읽어 봤다. 나는 많이 힘들었구나. 많이 괴로웠구나.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여전히 나아진 건 별로 없고, 의미 역시 찾지 못했으나 그래도 기분이 좋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게 아닐까. 관점의 차이다. 지금 돌아보니 무슨 정신병자가 쓴 글 같다. 이런 것도 하나의 철학이라 부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