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2월 2일

24년 12월 2일
이사를 하고 이틀째. 정신 없이 이틀이 지나갔다. 어제는 짐을 옮기는 데만 하루를 다 썼다. 도와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친구를 만나고 나머지 정리를 했다.
의자가 없고 책장도, 서랍도, 선반도 없다. 짐이 좀 휑해 보이고, 부엌의 수납장과 신발장은 칠이 모두 벗겨졌지만 그래도 정리하고 나니 나름 구색을 갖췄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심지어 위치도 좋다. 홍대입구역과 합정역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고, 홍대 번화가 바로 옆에 있지만 여긴 좀 골목이라 시끄럽지도 않다. 이 공간이 500에 60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고 고맙다.
임대차 계약서를 보니 집주인 분은 80대의 노부부인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청소를 마저 끝냈다. 화장실이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수전이랑 샤워기 호스를 보니 영 아니었다. 다이소에서 산 여러 약품을 뿌리고, 한 시간 반 정도 닦았다. 하얗게 변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이 많을 땐 청소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얼룩을 지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생각도 사라지고 깨끗해진 공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일 엄마와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부모 간의 갈등은 여전해서, 중간에 끼어 두 사람의 응석 아닌 응석을 받는 일이 생각보다 고달프다. 어쩌면 생각이 많아진 계기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없는 형편에 돈은 계속 필요하니 마찰이 생긴다. 마찰은 깊어진 감정을 더 깊게 하고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 두 분이 화해하길 바라진 않아도, 둘 다 내 부모니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누가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했는가. 물론 돈이 제일 중요하진 않아도 돈이 없으면 많은 것들에 내 삶을 빼앗긴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 돈 몇 푼에 얼굴을 붉히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엄청난 낭비처럼 느껴진다. 나는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고 싶다. 이런 일에 감정을 쏟고 머리 아파하는 대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러려면 벌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서 벌어 와야 한다.
인스타에서 누가 자취는 유료 호흡이다, 라고 한 글을 봤는데 참 맞는 말 같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내 18개월 간의 고생은 컴퓨터 한 대를 사고 이것저것 하니 벌써 반 이상이 날아갔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중이다.
돈을 벌자. 돈을 벌어야 한다. 뭐가 됐든, 하다 못해 주방 알바나 노가다라도 해서 돈을 벌어 와야 한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라고, 사회에 나가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어린 착각이었다. 부모가 건강하고 얼마라도 지원을 받을 수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두 분에게 감사하게 된다. 부모가 없었다면 보증금도, 월세도, 생활비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엄청난 부담이 됐을 거다.
내일 인터넷을 깔고, 의자를 주문하고, 장을 보고 집에서 못 가져온 짐들을 가져 오자. 오토바이도 빠른 시일 내에 중고로 사고, 안 되면 단기 알바라도 찾아서 벌자. 근처 식당에서 일하면 그래도 시급 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거다. 다들 안 하려고 하는 일이니 자리가 있을 거다.
시간은 금이다. 너무 많이 쓰여 의미가 퇴색돼 버린 이 말이 이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시간은 금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금이 있으면 시간을 살 수 있다. 나는 금이 없으니 내 시간을 금으로 바꿔와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 일이 있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빠르게 진행해서 결과를 내야 한다. 밍기적 댈수록 금이 나간다.
대충 계산을 해 볼까. 한 달에 월세가 58만원이다. 거기에 식비나 교통비, 인터넷 요금 등을 포함하면, 못해도 100만원은 벌어야 한다. 이걸 대충 30일로 나눠 보면, 하루에 3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하면 그 하루는 실패한 하루라는 의미다. 물론 3만원을 벌었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 그 3만원을 어떻게 벌었느냐가 중요하다. 단순 노동으로 3만원을 벌면 한 달을 그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먹고 산다. 그러니 남는 시간엔 몸값을 올려야 한다.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몸값이 오른다. 누군가의 한 시간은 만 원으로 바꿔지지만, 누군가는 20만원을 받는다. 그게 시장의, 이 세상의 이치다.
나는 무엇을 가졌는가? 서강대라는, 나름 명문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대학의 타이틀이 있다.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아무 자격도, 능력도 없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주가 되면 안 된다. 내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 나가 시급을 올린다. 그럼 더 적은 시간을 일해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과외가 잡히면 좋을 텐데, 이미 수십 건의 과외 제안을 했지만 단 한 건의 상담도 오지 않았다. 어떤 게 문제가 되는지 알면 좋을텐데, 무응답이면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참 잔인한 시장이다. 학벌이 애매하다. SKY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가 이공계라 수학에 특별히 강점이 있다고 어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문과도 아니어서 국어 과외도 잘 잡히지 않는다. 문제가 뭘까? 소개서에 너무 식상한 말들만 늘어 놓았나? 과외를 구하는 사람은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볼까? 아마 여러 과외 제안을 받았고, 그 중 내가 어떠한 이유 때문에 후순위로 밀렸을 것이다. 그걸 알아 내야 한다. 아마 그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닥치는 대로 하자.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재지 말고. 일단 벌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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