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주는 선물 – 래리 로젠버그
@ 명상을 다시 보게 만든 책. 강하고 속이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명상이 필요할 것 같다. 계속 내면을 바라보면서 나를 버려 나가자.
.책의 큰 틀. ‘호흡관법경’ 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16단계를 3단계로 나눠서 설명.
호흡관법경의 단계들
1~3단계. 호흡을 살펴보며 호흡에 마음을 집중시킨다.
4단계 : 호흡을 알아차림으로써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고요하게 통합되어 감을 느낌.
5~16단계. 느낌과 감정,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들은 무상, 고 , 무아의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축약본
1단계 : 호흡을 바라보기. 호흡에 집중하기.
2단계 : 호흡에 닻을 내리고 알아차리기 / 아상이 일어나려 할 때마다 호흡으로 돌아온다. 실체의 내가 없음을 알아리기.
3단계 : 닻조차도 놓아버리고 그냥 바라보기.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도 사라지고, 오로지 바라봄만 존재하는 단계.
.위빠사나 명상. 상좌부 불교에서 왔음.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에서 수행한다. 오로지 호흡에 집중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게 목적이다.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 : 사마디(삼매) // 위빠사나: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전체 과정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속의 진리(다르마, 법)의 여여함을 보는 것.
3단계 명상 수행법
1단계 :온몸 호흡 알아차림. 호흡이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부위에 집중해도 된다. @나의 경우 콧구멍이다. ㅋㅋ
2단계 : 호흡에 닻 내리기. 호흡에 닻을 내리면서 호흡 이외의 모든 것들, 감정이나 기분, 감각, 침묵을 포함한 모든 정신 상태를 바라본다.
3단계 : 어떤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본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집중한다.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않고, 단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에만 깨어 있다.
.”지금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집중해라. “크리슈나무르티
.수행법을 고르는 기준. 이것이 내삶을 더 낫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그게 뭐가 됐든 상관이 없다.
.기존의 모든 가르침을 의심하고 또 질문하라.
‘ 깔라마 인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버려라.
깔라마 인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 깔라마 경
부처는 자신의 법이 최고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하고 검증해보라고 했다.
. 붓다는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권위에 의존한다는 걸 인정했다. 이런 것들은 전승된 내적 경험에 의하거나, 외적인 꾸밈과 명성에 의지하거나, 어떤 것은 믿을 만하고, 어떤 것은 말도 안된다. 붓다는 그 가르침이 오래되었거나 성전에 씌어 있다고 해서 올바른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합리적이거나, 가르치는 사람에게 매료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는 걸 진리라고 믿어선 안된다.
.붓다가 가르친 건 ‘ 주의하라’ 지, ‘금지하라’가 아니다.
. 자등명. 스스로 불을 밝혀라. 질문이 가는 길을 선명하게 해준다. 깔라마 경의 핵심 가르침.
명상의 3단계 소개
1단계 : 온몸 호흡 알아차림.
의식을 호흡에 집중해서 마음을 잔잔하고 편안하게 한다.
이완과 곧은 자세 사이에서 중간을 정한다. 너무 이완되면 깨어있기가 어렵고 너무 곧게 앉아 있으면 경직된다. 표준자세는 아사나 라고 불리는 요가 자세. 그러나 얽매이지 말 것. 적당히 자세를 수정해도 된다. 좌선을 하다가 어딘가 불편하거나 아프다면, 최소한으로 움직여서 자세를 바꾼다. 다만 알아차림이 있고 움직여야 한다. 심하게 불편하다면, 그것 때문에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관찰한다. 얼마나 마음이 절박한지 관찰한다.
완전히 주의를 집중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냥 바라볼 것. 호흡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 호흡을 조절하려는 욕심이 생기나요? 우리는 인생의 모든 면을 통제하거나 조절하려고 한다. 호흡을 하면서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지 말 것. 그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앉아서 바라봐라. 관여하지 않고 흘려 보내기.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남들은 벌써 걷는데, 난 왜 아직 못 걷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그것에 집착하며 고통의 길로 들어선다.
대부분의 호흡 수행은 신체의 한 부분에 집중한다. 온몸 호흡 알아차림에서는 온몸으로 호흡을 확장한다. 수행은 매우 단순하다. 매 순간 호흡이 일어나는 과정을 온몸을 통해서 경험한다. 들숨과 날숨 외에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할 테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라. 평가하고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판단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올 것.
호흡을 조절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조절하게 된다. 조절하려는 마음과 전쟁을 벌이지 말라. 떠오르는 게 무엇이든 그것과 함께할 것. 억지로 막으려고도, 몰아내려고도 하지 마라.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호흡은 점차 평온해진다. 호흡이 평온해지면 몸은 이완된다.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도 함께 편안해진다. 마음의 이완은 호흡을 편하게 만든다. 선순환이다.
단순한 가르침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머물러라. 고통이 스스로의 생각에서 오는 걸 봐라. 일체의 번뇌는 마음이 만든다는 걸 깨닫고, 지금 그 순간에 머무르면 된다. 그게 전부다.
우리는 실제로 일어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연속적인 생각과 감정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를 ‘희론’이라고, 빨리 어로는 빠빤짜라고 한다. 생각이 감정을 낳고, 감정이 또 다른 생각을 낳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 지금 내 상태가 아닌가! 얼마 전 부대에 들어온 장애인 하나 때문에 책을 읽고 정리하는 데 집중을 못하고 있다. 지금 하는 것을 보고, 그것에만 집중해라.
깨어있다는 건, 더욱 더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
삶의 두가지 궤적. 하나 : 마음의 궤적. 마음이 낳은 것들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에 지배되는 삶.
둘 : 다르마, 법의 궤적. 깨어 있고, 일어나는 것들을 보는 주의집중 상태에 있다. 나는 존재 자체로 현존하고, 나의 경험과 직접 접촉하며, 생각이나 이미지, 개념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첫번째 궤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내 몸과, 호흡으로 돌아와라.
꼭 앉아서 수행을 할 필요는 없다. 걸어다니면서도 수행할 수 있다. 평범한 행동도, 평범한 풍경도 섬세하게 알아차려라. 그냥 걷는 것 뿐인데, 힘이 든다. 생각 때문에. 몸을 바라보고, 몸의 모든 행동에 깨어 있어라.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부처는 완전히 깨어있고, 생생하게 살아가고,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의미한다.
모든 마음은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해석한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집중하지 말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올 것. 마음의 상과 싸우지도 말고, 길을 잃지도 마라. 숨을 쉬고, 숨을 쉰다는 걸 안다 라는 놀라운 단순함으로 다시 돌아올 것. 나머지는 필요 없다.
호흡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 것. 실망하는 마음이 드는 걸 그저 바라봐라.
2단계 :호흡에 닻 내리기
감정은 매 순간 변하지만 호흡은 늘 존재한다.
. 호흡에 집중하는 히이 길러질수록 몸과 호흡은 더 자연스러워지고 마음은 더 평온하고 명징하고 평화로워진다. 붓다의 진실한 가르침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뿌리내리면서 마음은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갈 준비가 된다. 바로 위빠사나 명상, 통찰의 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에서 호흡은 하나의 닻이자 지지대. 명징하게 바라보지 못할 때, 어떠한 방해를 받을 때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라. 관찰하지 못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려고 할 때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라.
2단계의 교훈 : 우리를 성가시게 하고 산만하게 하는 건 없다. 공, 연기, 무상의 가르침. 외로움, 초조함, 불안, 분노 같은 강력한 에너지가 생겨도 호흡은 그대로 있다. 호흡은 내가 살아 있는 한 항상 그대로 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든, 감정에 휘둘리고 있든 어느 경우이든지 간에 전적으로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 첫 번째 단계인 온몸 호흡 알아차림으로 돌아가라.
일어나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려고 하지 말 것. 그저 바라봐라. 내가 다룰 수 없는, 그러니까 그냥 바라볼 수 없는 크기의 감정이나 생각이 온다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라.
위빠사나 수행은 고통의 뿌리에서 해방되는 것을 강조하는 지혜 수행이다. 고통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바로 있는 그대로를 정확히 보는 게 중요하다. @ 그렇다. 그저 정확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4념처.
1. 신념처. 앉아서 호흡수행. 몸을 바라보는 것.
2. 수념처. 받아들이는 감각, 받을 수.(웨다나) 웨다나는 감각 또는 느낌. 안의비설신의 육각.(@육각이 맞나?) 웨다나는 이감각을 통해 형성된 생각을 이야기한다.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 무덤덤한 감각들. 탐진치.
어떤 감정이 드는 지 깨어있어라.탐진치(탐착, 혐오, 어리석음)으로 물든 마음을 보는 것. 깨어있음을 강화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덜도 그것의 자극에 별로 반응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3. 심념처. 오고가는 마음의 여러 성질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 것.
4. 법념처
생각의 본질을 관찰하고 이해할 것. 법, 다르마에 대한 생각. 삼법인을 보는 것.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고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어떤 불교 사원에선 불전에 바칠 꽃을 약간 시든 상태로 둔다. 꽃이 가장 예쁠 때 그 즐거움을 만끽해야 한다. 꽃이 시들었다고 호를 내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꽃이 피어 있는 동안 꽃을 온전히 즐기고, 시들면 시들었다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
‘나’와 ‘내게 일어나는 것’ 을 일체화하면서 대부분의 고통이 일어난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면, 그걸 나와 동일시한다. 어떤 판단이나 생각이 일어나면, 그걸 나와 동일시한다. 애초에 고정 불변의 ‘나’도 없고, 내가 하는 생각과 판단은 그저 생각과 판단일 뿐, 그건 내가 아니다.
바라보는 ‘나’는 없다. 단지 바라보는 행위만이 있음.
.공포, 외로움, 슬픔, 분노 따위의 단어들은 강력하게 판단하는 힘이 있다. 언어를 벗어나서, 그저 바라봐라. 보는 것 이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 보상도 없고, 보는 것 이후에 따라오는 것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특정한 마음 상태를 피하려고 애쓰면서 산다. 그러나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공포나 혐오감을 피하려고 할 때 에너지는 낭비된다. 명확하게 그 감정을 바라봐라.
3단계 : 선택하지 않고 깨어있기
호흡을 닻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다. 이
. 지금 순간에 깨어 있기. 순간에 집중하며 사는 삶. 이 순간에 머무는 건 그저 머무를 뿐이다.
. 깨어있으면, 아무런 판단이 없다. 마음이 지금 일어나는 걸 잡고 늘어지거나, 선택하는 게 없다.
. 지금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내 삶이다. 지금이 사라지면 또 다른 것들이 나타나는 게 반복된다. 그것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바라봐라.
‘바히야 경’ : 그러면 바히야야, 그대는 자신을 이렇게 훈련시켜야 한다. 보이는 것에 대하여는 오지 ‘보임’만이 있다. 들리는 것에 대하여는 오직 ‘들림’만이 있다. 감촉되는 것에 대하여는 오직 ‘감촉’만이 있다. 인식되는 것에 대하여는 오직 ‘인식’ 만이 있다. 그리고 바히야야, 그것들과 관련된 ‘너’란 없다. 거기에 ‘너’가 없을 때, 그대는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으며 그 사이에도 없다. 바로 이것이 괴로움의 종식이다.
.수행과 일상을 분리하지 말 것. 일상의 모든 순간을 수행으로 삼아라. 내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동이 법이 될 수 있다.
. 나의 법 수행자들이여, 부디 중요한 것은 앉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 얼마나 깨어있는가임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경지에 도달했나요? 마음이 혐오감을 갖지 않고 해로운 것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고 유익한 것을 키우는 것을 배우고 있나요? 이완되어 있으면서도 계속적으로 마음챙김에 깨어 있나요? 주의 집중을 놓칠 때에도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게 할 수 있나요? 잠 들면.. 깨어나고.. 그 뿐입니다.
. 단순한 행동에도 온전한 마음을 들인다는 건, 삶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일이다.
.어린 자녀가 있으면 매일 껴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이를 껴안을 때 마음의 반은 여전히 일터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껴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을 챙겨서 보게 되면 자녀에게 더 완전하게 마음이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행동입니다.
. 수행은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에서 벗어나도록 당신을 인도합니다. 운전이라고요? 좋습니다. 운전하십시오. 문자를 합니까? 좋습니다. 문자를 하십시오. 모든 시간과 장소는 그 날므대로 독특한 반응을 요구합니다. 당신은 현재 진행형의 배움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아름다움입니다. 잠재적으로 당신이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당신의 스승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게 되면 충만하게 됩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A지점에서 B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수행은 A에서 A 로 어떻게 가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믿음을 미래의 나에 두지 마십시오.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당신이 실제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집중해라.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살지 말고, 종교적 가르침이 말하는 방식으로 살지 말고, 부모가 말하는 방식으로 살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사십시오.
.습관처럼,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멈춰라. 우리의 조건화된 반응 양식에 깨어있음을 가져다 놓아라. 습관처럼 화를 내거나, 실망하거나, 좌절을 느끼거나. 이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흔들림없이 모든 상황에 깨어있는 수행자를 묘사하기 위해 집주인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집을 방문합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친절하고, 우아하고 , 잘 즐깁니다. 초대되지 않은 사람들은 술에 취하고, 행패를 부리고, 차려놓은 모든 음식을 먹어 치웁니다.
손님의 행동에 빠져 주인 노릇하는 걸 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집주인이 아니다. 오고가는 다양한 손님을 맞이해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이것이 수행이다. 삶의 주인이 되어라.
. 경험은 비료다. 우리는 실수에서 배우고 어리석음과 지혜의 부족을 보며 더 지혜롭게 성장한다.
. 지혜는 살아 있고, 순간순간 검증되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실수에서 배우려고 노력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