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8월 28일
조남호 아저씨의 강의를 배달하면서 들었다. 너진똑 다음으로 내 인생에 진짜 많은 영향을 미친 유튜버가 될 것 같다. 강의를 요약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목적주의에 대한 비판’ 다른 하나는 ‘충만주의’. 너진똑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목적주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맞춰 하루를 계획하고, 그 하루를 온전히 살고, 또 일주일을 살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 목표를 이루면 성공한 삶, 아니면 실패한 인생으로 판단하는 그런 사상.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하게 퍼저 있어 그것이 전부로만 여겨지는 그런 사상. 람보르기니를 타는 A와 모닝을 타는 B를 두고, A가 더 열심히, 잘, 멋있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착각. 내가 느끼는 공허함과 불안도 다 그곳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목표는 공허하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내가 깨달은 진리다. 아무리 높은 목표를 세워도, 그 목표는 결과일 뿐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 문제, 한 문제에 오롯이 집중했다. 내가 수능 때 롤 1400판을 한 것도, 매일 1박 2일을 다시 보며 순공시간이 5시간도 채 안 됐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높은 대학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좋은 대학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것이다. 서강대에 와서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 우월감은 연세대를 다니는 친구 앞에서 무너진다. 서울대에 다니면서 우월감을 느낀다면, 하버드에 다니는 사람 앞에서 무너진다. 마찬가지다. 내 나이 스물 다섯, 주변에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열심히 요리를 배우는 친구도 있다. 모아둔 돈이 꽤 되는 친구도 있고, 나처럼 한 푼 없이 매월 생활비를 내느라 고역을 치르는 친구도 있으리라. 나 역시 그런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면서 계속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아 뭔가 공허하고, 아 뭔가 인생 망해가는 것 같은데. 불교가 어쩌구 연기가 어쩌구 잘 떠들어 댔지만, 나는 그런 진리를 다시금 잊어 버렸다.
목표가 공허한 다른 이유는, 목표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포기하거나, 이루거나. 포기한다면 이루지 못한 목표가 아른거리고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짓게 된다. 이뤘더라도, 그 성취감과 기쁨은 잠시일 뿐, 이내 공허함이 찾아오고 다시 다른 목표를 찾아 나선다. 더 높은, 더 어려운 그런 목표. 한 때 그런 성취감이 나를 살게 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반쪽짜리 답이었다. 성취감이라기 보다, 하루를 오롯이 살았다는 그 감정. 오늘 하루를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몰입했다는 그 감정이 나를 기쁘게 했다.
조남호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잊고 지내던 그 감정을 다시금 기억해냈다. 목표의 달성 여부가 아닌, 하루를 진짜 온전히 살았다는 그 감각. 풀리지 않는 문제를 몇 시간이고 째려 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해보던 그 때.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지문을 기를 쓰고 쳐다 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그 때. 지금 내가 느끼는 공허함은 그런 것이리라. 그렇게 충만하게 살아본 게 언제였던가. 조남호 선생은 그런 삶의 태도를 충만주의라고 칭한다. 그 충만주의가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고. 아이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 내는 것. 생산성에만 집중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지점은 그곳이라고.
들으면서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우리 시대의 부처같다.
선불교에서 조주 선사의 이야기를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배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잔다.” 밥 먹을 땐 밥 먹는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고, 졸리면 다른 잡념 없이 잠을 잔다. 많은 이들은 그리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열반에 이르지 못한다. 당시엔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인상이라는 게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힘이 약해진다.
충만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할 것. 그것이 내가 마주한 공허함의 해답이리라. 뭘 하든, 결과에 초연하게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준 조남호 선생님께 절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