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5월 23일
죽지 않는다면 삶은 계속 이어지고, 삶은 꾸준히 내게 고난을 제시한다. 매 번 삶이 내 목을 조여올 때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수능이 끝나면, 군대에 전역하면 더 이상의 괴로움은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내 편협한 착각이었다. 삶은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새로운 올가미를 들고 와 내 목에 걸고 서서히 조여 온다. 아주 천천히. 그게 싫어 스스로 발판을 걷어차고 싶어진다. 차라리 이것들이 다 끝난다면, 잠시 고통스럽겠지만 곧 평화를 찾을 테다. 기린처럼 목이 길게 늘어진 채로 말이다.
지나온 어려움, 어떤 식으로든 극복한 어려움은 이제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쉽게 잊혀진다. 그렇기에 우린 남들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한다. 누군가 죽을 만큼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최대한 공감하는 척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어려움과 괴로움은 그들의 몫이고, 누구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고 느낀 기억이 없다.
이 올가미도 언젠간 사라지리라는 걸 안다. 사실 모르겠다. 이게 내 마지막 올가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이 올가미를 풀지 못한 채로 몇 가지 올가미가 더 걸릴 수도 있겠다. 이런 착각은 도저히 올가미가 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올가미의 매듭이 너무 촘촘하고 단단해서,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풀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애쓰기를 포기하고 싶다.
죽음은 나쁘다. 주변에 폐를 끼치는 행위고 삶의 모든 가능성을 닫는다. 가능성을 닫기 때문에 죽음이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었다. 좋은 쪽으로 변할 가능성과, 더 나쁜 쪽으로 변할 가능성 모두 닫는 것이니 이젠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수업은 얻어 갈 게 없고, 학교는 5번의 결석에 임박했다고 F를 줄 거라고 협박을 한다. 한 학기가 이제 곧 끝나 가는데 성장했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한다. 정확히는 수업을 통해 얻은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학점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B급 인생.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대부분 대학생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학점으로 채우려고 한다. 나는 그러기엔 너무 많이 지나 왔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학교에 미래를 기대하기엔 내 학점이 너무 낮다. 어떤 길로 가야할 지 도저히 모르겠다.
매듭이 너무 많고 촘촘해서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아주 뿌연 안개가 가득하다. 가야할 곳이 보이지 않고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뭘 해야 이 올가미를 풀 수 있을까.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남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장점이 많다. 비교적 잘 닦여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 뭘 해야할 지가 분명하다. 묵묵히 길을 잘 걸어가다 보면 어느 정도의 인생을 살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질 높은 포트폴리오와 어학 시험 성적을 만들어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여러 일을 성공적으로 마쳐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오르고, 적당히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 여생을 살아간다. 이런 삶이 얼마나의 만족을 가져올 지는 모르지만, 무얼 해야 할 지가 명확한 삶이다.
반면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은 시작부터 골때린다. 대부분 그런 길을 걷는 사람은 남들과 다른 이상을 갖고 있거나, 사람이 많은 길에서 밀려 길 밖으로 떨어진 사람들이다. 다들 아등바등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나는 이미 그 길에서 밀린지 오래다.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벌레가 내 살점을 물어 뜯는다. 이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앞으로 가야 하는지 옆으로 가야 하는지 조차 알아볼 수가 없다. 죽을 고생을 하며 걸었는데 낭떠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be one. 단독자가 되라고 이야기하지만 무리에서 떨어져서 죽은 사람이 더 많지 않겠나.
걷지 않으면 죽는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거다. 나는 오래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음식도,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달 뒤엔 월세조차 못 낼 형편이 될지도 모른다. 한 달의 수입보다 지출이 크고, 별다른 사치를 부리지 않았는데 점점 자산은 줄어든다. 걸어야 한다.
길을 모른채로 걸으려니 막막하다. 원래는 대충 방향이라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방향도 잘 모르겠다. 근데 다른 방법이 없다. 걷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많은 단독자들은 자신이 성공한 과정을 설명하며 여러분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그러나 분명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다. 몇몇은 그렇게 길이 아닌 곳을 걷다가 죽을 거고, 대부분은 다시 원래의 무리에 돌아갈 것이다. 뒤로 밀린 걸 아쉬워하며 앞으로 가기 위해 더 기를 쓰겠지.
나는 혼자 걸어야 한다. 외로움과 불안을 벗 삼아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계속 걸어 봐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올가미가 점점 더 목을 조여도 가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했을 때의 장점은 더 큰 보상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남들이 걷는 길은 정해진 파이를 나눠 먹게 된다. 내가 길을 만들면, 그 길을 걸으며 얻는 보상은 모두 나의 것이다.
계속 걸어라. 징징대지 말고.